루이스는 옅은 갈색을 띠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건지, 그의 몸은 비정상적으로 천천히 깊은 곳으로 잠긴다. 코와 입에서 나온 공기 방울이 수면을 향해 떠오른다. 루이스의 멀건 시선은 공기 방울에 머물러 있다. 그는 넋을 놓고, 자신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만 겨우 인지했다. 기이하게도 그는 숨 쉬는 게 곤란하지 않았다. 그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다는 걸 기이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가라앉는 걸 인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주 깊은 곳까지.


“왜 정신을 놓고 있어?”


누군가 루이스에게 말을 붙였다. 루이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 붙인 상대를 똑바로 응시했다. 제인이었다. 내가 그랬어? 루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제인은 더 캐묻지 않고 루이스의 옆에 앉는다. 루이스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매만지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려놓았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는 땅이나 파면서 놀고 있던 게 분명했다. 제인이 돌이나 쌓으면서 놀자고 말했고, 루이스가 동의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제 곧 9살 되는 제인은 며칠 후면 고아원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둘은 그 일에 관하여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몇 시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제인이 입을 뗐다. 나, 이제 제인 그레이가 돼. 그녀를 데리고 가는 부부의 성씨가 그레이인 모양이었다. 루이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설에서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던 또래 친구가 가정을 꾸린다는데, 축하해줄 일이었다. 입양된다는 건 원생들의 부러움을 살 일이기도 했지만, 루이스는 별로 질투가 나지 않았다. 그런 성정을 타고났다. 가서 잘 지냈으면 좋겠어. 루이스가 진심 어린 바람을 전한다. 응. 제인이 짧게 긍정했다.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놀이에 집중했다.


제인은 알려진 대로, 나흘 후에 시설을 떠났다. 그레이 부부는 모래색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었다. 모래색 자동차의 뒷좌석에 제인이 앉는다. 아이들과 함께 그녀를 배웅하러 나온 루이스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친구의 안녕을 바랐다. 이렇게 친구를 떠나보낸 건 제인이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따금 시설을 떠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루이스는 정문까지 나와서 배웅을 했다. 제인, 조슈아, 에드워드, 재키, 브라이언, 질…. 떠나간 아이들의 얼굴이 루이스의 머릿속에서 어른거린다. 그리고, 나이가 좀 있는 해리가 가정을 찾은 건 의외의 일이었다. 잘 있어, 루이스. 해리가 인사한다.


해리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루이스가 눈을 떴다. 수면 위로 몸을 번뜩 일으킨 느낌이었다. 아직 해가 온전히 뜨지 않았는지, 새벽의 푸른 빛이 얇은 커튼을 뚫고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가 눈을 부비적거리면서 협탁 위의 시계를 확인한다. 다섯 시 좀 넘은 시간이었다. 그가 비척거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좀 이르지만, 아침 식사 준비를 할까. 그렇게 생각한 루이스가 냉장고에서 베이컨과 계란을 꺼내고, 프라이팬을 든다. 루이스는 요리를 하면서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을 되짚어본다. 고아원 시절의 꿈을 꾼 건 오랜만이었다. 평소에 기억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오래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루이스는 흐물거리는 베이컨과 반만 익힌 계란을 접시에 올려놓았다. 음식을 형식적으로 포크로 찍어 먹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절을 회상한다. 대단한 계기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이번 꿈이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랐던 고아원은 교외에 있었다. 그의 첫 번째 기억은 흙바닥에 앉아서 시설의 아이들과 어울리던 일이다. 몇 안 되는 장난감 같은 건 힘 있는 아이들이 차지했고, 대부분의 아이는 루이스처럼 아무것도 없이 방치되고는 했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 아이들에게는 땅 파는 일 같은 게 그럭저럭 즐거운 놀이였다. 어쩌다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는지 알게 된 건 루이스의 머리가 좀 굳고 나서였다. 그렇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아원 입구에 버려져 있던 갓난아이를 원장이 거뒀다. 길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때마침 시설에는 여유가 있었다. 아직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이었다. 루이스라는 이름이 붙고, 출생 서류가 작성된 날이 곧 그의 생일이 되었다.


회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서 루이스는 과거를 떠올리는 걸 그만두었다. 그 시절에 관한 이렇다 할 좋은 추억도 없었다. 그는 끝까지 입양되지 않았고, 성인이 되는 날 시설을 나섰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었지. 능력자 사회에 복잡하게 얽히기 전까지는 그랬다. 건조한 유년. 성년이 된 해도 마찬가지로 건조했다. 루이스는 식기를 싱크대 안에 넣는다. 이제는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색깔이 달라져 있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들을 차곡차곡 접어 넣는다. 그는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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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키워드. '꿈, 무의식, 유년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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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에리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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