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리퀘스트

벨져 맞는 리퀘스트.

메에리웨더 2014. 10. 22. 19:58

내 요구 내용 : 벨져 납치해서 때려주세요. 얼굴만 빼고. 입에 얇은 가죽끈 물려주세요. 머리카락을 잡든 자르든 암튼 머리카락으로 뭔가 해주세여. (새벽 버프)

"징글징글하다 니 새끼도 참."

아리고 까진 손을 들어 신경질적으로 이마를 문지른 남자가 한 말이다. 신원이 불분명한 남자는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있었으며 덩치가 남들보다 조금 좋은 것 외엔 특별한 점은 없었다. 그런 남자가 싸구려 와인 냄새가 풍기는 입을 열고 저속한 욕들을 끌어올려 앞에 기둥에 묶인 사내를 향해 퍼붓는다. 전장터에서 건진 값진 포로다. 한창 적들과 싸워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졌을 쯔음 뒤에서 동료들과 습격한 것이 제대로 얻어걸렸다. 동료 한둘은 마지막으로 이 사내의 쌍검에 목이 떨어졌지만 말이다. 뒷수작으로 명을 받아 당장에 붙든 이 허연 사내의 이름은 벨져 홀든. 요즘 가장 핫하신 이슈를 끌고 다니는 몸이다.

임무를 막 달성하고 한껏 고양된 기분을 동료들과 술로 풀던 참 이었다. 어이, 제이미 어딜가. 너무 마셨더니 화장실이 급해. 그래? 그렇다면.. 기다리지 말라고 배까지 아플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제이미라 불린 사내는 시덥잖은 핑계로 어딜가냔 동료의 말을 제치고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화장실은 개뿔. 사실은 창고에 묶어둔 포로가 생각나 그 쪽으로 가볼 심산이었다. 그의 술로 높아진 기분이 여흥을 찾는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우리 아리따우신 귀족 나으리께선 전장에서 칼질하시는 거 보단 더러운 귀족 파티에서 드레스라도 입고 부채질하시는게 더 어울리시는데. 나으리께 전쟁터는 너무 남자답잖수."

무슨 말을 던져도, 어떠한 모욕적인 처사를 해도 반응조차 않는 벨져 홀든의 모습에 사내는 금방 욱한다. 처음엔 고고한 귀족 나리의 자존심을 밟고 나오는 당황스런 리액션을 감상하며 웃어줄 계획이었다. 초장부터 비협조적인 태도에 멋드러지게 무산됬지만. 남자가 되서는 쓸데없이 예쁜 얼굴을 하고 머릴 그리 길러낸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제이미는 발을 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잘 보이고 효과적인 배를 걷어찼다. 자연스레 나오는 탄성이라도 참아보겠답시고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두번째론 바닥에 펴진 길고 굳은살 조차 없어뵈는 손을 가차없이 밟았다. 검사가 되서 손이 아주 깨끗해? 하는 비아냥거림도 잊지 않았다. 밟힌 손가락이 움찔이며 더 이상의 손상을 용납치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구부러진다. 손등 위로 무게를 실어 밟고 있는데도 말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기대하던 신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에 눈에띄게 실망스럽단 표정을 짓던 제이미는 이윽고 제 싸구려 가죽 목걸이를 잡아 뜯었다. 원체도 헐렁한 이음새는 갑작스런 힘에 쉽사리 뜯어졌다. 싸구려래도 가죽이긴 가죽이니 이걸로 충분하겠지. 땀을 먹은 가죽 목걸이를 벨져 홀든의 눈앞에 흔들어보인다. 대번에 찌푸려지는 인상이지만 벨져는 여젼히 입을 열지 않았다. 거칠게 턱을 잡고 입을 벌려 가죽끈을 감아 물리고 그걸 그대로 뒤에 모양이 엉성한 리본으로 매듭짓는다. 입에 배이는 짠맛이 진저리 쳐진다는 듯 팍 인상을 쓰던 벨져는 차라리 침을 흘려낸다. 더러운 땀이 섞인 침을 삼키느니 흘리는 추한 꼴이 더 낫다 이거지. 이젠 신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나를 무시하는 그 태도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그리 기세 좋게 말을 던진 제이미는 또다시 발을 휘둘렀다. 이번엔 벨져는 과연 터지는 침음성을 막지 못했다.

손등이 까지고 이마에 땀이 맺힐 때 까지 정신없이 손발을 휘두르던 짓을 그만뒀다. 힘에 부친다. 분명 옷을 다 벗겨놓으면 온 몸엔 울긋불긋한 피멍들이 산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벨져의 얼굴만은 어떠한 상처없이 깨끗하다. 건들고 싶지 않단 느낌이었다. 이 이유또한 술판 한가운데서 빠져나와 여기까지 온 이유마냥 단순하다. 이렇게까지 때려댔는데도 고집스레 닫힌 눈에 화가난다. 의도적인 무시만큼 사람을 열받게 하는 일은 없다. 이제 더 이상의 폭력은 무의미 할 것 같아 들린 손을 거두고 벨져 홀든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드디어 끝난 손찌검과 발길질에 밭은 숨을 내쉬는 모습이 보였다. 태도만은 여전히 완고했지만 몸은 다소 지친 모습이다. 그런 벨져를 훑던 시선이 문득 어딘가에 고정된다. 이마에 서린 땀을 대충 닦아내며 제이미는 비릿하게 웃었다.

"계집년마냥 징그럽게 기른 그 머리.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 치마라도 둘러주고 싶지만 땀내나는 사내놈 소굴에 그딴게 있을리 없어서. 대신 좀 남자답게 꾸며주지. 그리 위협적이게 읊은 사내는 곧 품 안에서 나이프를 꺼내든다. 느릿하게 떠진 눈이 나이프와 앞의 괴한을 한번씩 보더니 다시 감긴다. 저속하기 짝이 없군. 상종할 가치도 없다. 아마 벨져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말할 시선이었다. 그 시선에 표정이 일그러진 제이미는 퍽 거친 손길로 벨져의 머리카락을 틀어쥔다.

"재수없는 자식."

그리 말하고 단번에 잡은 머리카락 만큼 베어낸다. 서걱이는 소리가 창고를 메우고 곧 결좋은 백발이 지저분한 바닥에 어질러진다. 곱게 자라지 못한 사내의 손길은 서툴기 짝이 없었으므로 삐죽삐죽, 정돈된 벨져의 머리카락이 마구 잘려나간다. 이윽고 어설피 짧게 잘려진 머리카락의 우스운 모양새에 사내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벨져의 덤덤함에 그 웃음마저 곧 사라졌지만 말이다. 본판이 되니 그리 우습지도 않은 것 같고. 불만을 가득 품은채 벨져를 노려보니 그가 드디어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인다. 곧 사내는 눈을 맞추고 짧게 웃는 벨져를 보고 굳어버린다. 명백히 비웃는 태도다. 저를 비웃고 있다. 그 생각에 칼을 쥔 손이 분노로 떨린다. 건드리지 않은 저 얄쌍한 얼굴마저 찢어버리겠단 생각으로 걸음을 떼자, 창고 밖으로 동료들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듣는다. 정신이 돌아오니 이 자를 죽이는건 자신의 권한 밖이란 사실이 떠오른다. 뿌득이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이를 갈지만 칼은 바닥으로 신경질적이게 던져버린다. 그러고선 바닥에 흐드러진 백발을 집어들어 제 주머니에 넣는다. 나머지엔 침을 뱉고 돌아선다. 명령만 아니었음 죽은 목숨이란 싸디 싼 협박을 마지막으로 제이미란 사내는 문을 열고 나간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벨져는 눈을 뜬다. 곧 시선은 바닥에 남겨진 나이프를 향하고, 벨져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